고백의 원형

Legacy/이어 받은 것과 Oblivion/잊혀진 것 사이에서― Joseph Kosinski 論 본문

빛나는 착각

Legacy/이어 받은 것과 Oblivion/잊혀진 것 사이에서― Joseph Kosinski 論

S.mi 2014. 11. 21. 17:44

Memento Mori

2010<트론: 새로운 시작>을 리메이크하여 SF 영화계의 신성으로 떠오른 조셉 코신스키 감독. 2013년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오블리비언>을 발표하면서 그는 단 두 편의 영화로 SF 영화계의 주목할 만한 감독으로 자리매김 했다. 사실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그의 프로필은 영화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스탠포드에서 기계 공학을 전공하고 콜롬비아에서 건축학 석사를 딴 조셉 코신스키는 광고 디렉터로 활동하며 엑스박스,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등 유명 전자 제품의 광고를 제작하여 자신만의 감각적인 연출로 광고계에서 먼저 명성을 얻었다. 그가 상업 광고에서 보여준 독특한 비주얼 감각과 스타일에 반한 월트 디즈니사가 <트론: 새로운 시작>의 새 감독으로 그를 점찍으면서 영화감독으로서 조셉 코신스키의 커리어가 시작되었다. <트론: 새로운 시작><오블리비언>의 화려한 영상들은 그런 감독의 커리어가 강점으로 잘 녹아난 작품들이었다.

주목할만한 점은 미래적인 이미지와 하이테크놀로지로 가득 찬 그의 영화가 늘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발전된 미래의 기계문명을 관통하여 늘 기원(Home)으로 회귀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영화는 인류가 공유하는 태초의 기억이 이끄는 곳, 진정한 파라다이스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린 로드무비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을 찾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만든 가상공간 그리드에서 창조주를 배반한 디지털 세계를 목도한 샘 플린(개럿 헤들런드)의 귀환은 아버지 케빈 플린(제프 브리지스)의 죽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잭 하퍼(탐 크루즈) 52호가 공유된 기억을 쫒아 3년을 헤맨 끝에 호숫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테트와 함께 우주에서 먼지로 사라진 잭 하퍼 49호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것만이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것들을 다시 기억하게 하고 잃어버린 길을 다시 찾게 할 것이다.

 

덫에 걸린 창조주

<트론: 새로운 시작>의 이야기는 천재적인 게임 개발자인 케빈 플린의 실종에서부터 시작된다.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다 어른이 되어 버린 케빈의 아들 샘은 어느 날 아버지의 옛 동료로에게 아버지로부터 호출이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플린의 아케이드에 찾아갔다가 우연히 그리드의 서버를 작동시키고 그 가상현실 안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을 한 클루(CLU: Codified Likeness Utility)와 클루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구해 준 쿼라를 만나면서 샘은 아버지가 자신의 어린 시절 침대머리에 앉아 동화처럼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이 그리드라는 가상현실로 실현되었으며, 아버지가 그 가상현실에 안에 갇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플린이 개발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를 능가하여 유저들을 위협하기 시작한 프로그램들의 폭주로 완벽한 가상세계를 만들려던 그의 꿈은 실패로 돌아간다. 디지털 신화의 창세기 겨인 이 영화에는 빛에서 시작된 그리드의 가상 세계, 창조주에 도전하여 그의 아들을 죽이고 그리드를 넘어 현실까지 장악하려는 클루와 프로그램, 그리고 그들을 저지하기 위하여 일체가 된 케빈 플린과 그의 아들, 쿼라 등 성서 모티프가 곳곳에 포진해 있다. 영화의 막바지에서 샘과 쿼라를 현실로 돌려보낸 후 그리드에 남아 자신이 만든 피조물들과 함께 하나의 섬광이 되어 사라지는 장면은, 자신을 창조한 신의 권위에 도전하여 바벨탑을 쌓고 타락하여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 물과 불의 심판을 받았던 성경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까지 한다. 그리고 그 표면화된 상징들의 보다 깊숙한 곳에서 우리는, 완벽한 세상을 꿈꾸었으나 자신이 만든 세계로부터 소외되어 결국 자신의 손으로 그 세계를 다시 닫아야만 했던 인간적인 창조주의 고뇌를 본다. 자신이 만든 덫에 자신이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케빈 플린은 바로 코 앞에 와 있는 자신의 꿈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클루의 작동으로 인해 유저들을 위한 워리어로 개발되었던 트론마저 유저인 자신의 아들 샘을 공격하는 상황에 이르자 그는 더 이상 망설이고 있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휴머니티가 없는 완벽한 세계란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는 마침내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드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은 자신의 디스크를 ISO 혁명의 기술 집적체인 쿼라에게 장착하여 샘과 함께 현실세계로 보낸 그는 이제 다음 세대로 자신의 꿈을 넘긴다. 그리고 고백한다. 눈앞에 있는 것조차 못 보면서 완벽한 세계를 만들고자 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그리고 당부한다. 쿼라와 자신의 디스크를 가지고 돌아가라고. 그러므로 이제 샘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기억하는 일, 그것은 앞선 세대를 이어받되 그들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의심하라, 그리고 기억하라

2077314일 아침, 기억인지 꿈인지 모를 것들을 떠올리며 시작하는 잭 하퍼의 아침으로 <오블리비언>은 시작한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 5년 전 본안을 위해 기억을 삭제당한 채 파트너인 비카와 함께 지구에 배치되었다. 그의 임무는 적들에 의해 파괴된 드론을 관리하는 일, 2주 후면 임무를 마치고 테트에 돌아가 다른 사람들처럼 타이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비카와 달리 그의 머릿속에는 떠나지 않는 두 가지 의문이 있다. “전쟁에 이겼는데, 왜 우리는 지구를 떠나야 하는가?”, 적은 누구인가?”라는.

우연히 정찰 중 오딧세이 호가 추락하는 것을 보고 그리드 17로 출동한 잭은 잔해 속에서 수면박스 안에 들어 있는 꿈속의 그녀, 쥴리아를 발견하고 그녀를 구해 타워로 돌아온다.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잭을 알아보지만 그 옆에 있는 비카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잭을 보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잭에게 비행기록계를 찾아 추락의 원인을 알아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다. 비행기록계만이 그녀가 델타수면에 빠져 있었던 60년의 시간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록계를 찾으러 간 곳에서 우주에서 온 침략군으로 알았던 자들이 자신과 같은 인간임을 확인한 잭 하퍼는 이제 삭제된 기억의 복원을 시도한다. 그가 사랑한 사람과 그의 집을 찾기 위하여.

정해진 구역에서 비카의 감시 하에 드론을 수리하는 잭 하퍼의 모습은 정해진 조립라인에서 나사를 돌리던 <모던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을 떠오르게 한다. 그는 역사의식이 소거된 채, 타워49호의 관할에 갇혀 고장난 드론을 수리할 뿐이다. 그저 방사능 구역에는 들어가지 말 것, 너무 많은 것을 묻지 말 것이라는 테트의 두 가지 규정을 준수하며 기계적으로 드론을 찾아 수리할 뿐이다. 그러나 아내를 찾았다며 테트의 존재를 부정하는 잭을 비카가 샐리에게 고발하면서 드론의 공격을 받게 된 잭은 우연치 않게 들어간 방사능 구역이 실은 복제된 잭 하퍼 52호에 의해 관리되는 구역이었으며 자신을 공격할 드론을 수리하는 잭 하퍼 52호를 보고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실은 지구를 파괴하는 끔찍한 일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비카의 죽음을 목도하고 아내가 공격당한 후에야, 그리고 복제된 잭 하퍼가 잭 하퍼를 공격하는 끔찍한 현실을 목도한 후에야 드론은 기계덩어리에 불과할 뿐이며 그것을 수리하고 프로그래밍하는 자신이야말로 진자 무기였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는 관객에게 말한다. 의심하라고, 그리고 기억하라고.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당신이 아니라고. 아무 생각 없이 익숙하게 누르는 버튼 하나가 실은 당신의 삶을 조금씩 부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도 미래는 없을지 모르므로. 기계 문명이 약속했던 장밋빛 미래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실은 공멸의 길이었는지도. 비카의 죽음 앞에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잭 하퍼의 질문은 무겁게 내려앉았지만 샐리는 시스템 오작동이라고 가볍게 받아친다. 그리고는 되묻는다. 기계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니었냐고.

  

“Are you still an effective team?” 

후략... 

(잘 사는 것 보다 잘 죽는 것이 중요하다며 희생을 택한 잭 하퍼, 아들을 위해, 그리고 수만은 유저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샘 플린그 희생을 가르친 것은 책트론에서는 책을 보며 희생을 배웠다는 쿼라가, 오블리비언에서는 파괴된 뉴욕 도서관에서 집어 온 책 한권이.. 그 책에서 읽은 매컬리의 <고대 로마의 노래>의 한 구절이 잭 하퍼의 마지막 결단을 내리게 한다. 선조의 유산과 신념을 위해 죽는 것보다 더 고귀한 죽음은 없으니..”)




오블리비언 (2013)

Oblivion 
7.9
감독
조셉 코신스키
출연
톰 크루즈, 모건 프리먼, 올가 쿠릴렌코, 안드레아 라이즈보로, 니콜라이 코스터-왈다우
정보
SF, 액션 | 미국 | 124 분 | 2013-04-11